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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털이 2024

작년 이맘때 쯤에는 뒤뜰에 밥먹으러 오는 고양이들을 잡아서 중성화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통덫을 빌리고, 지자체와 연계한 TNR 사업 지원까지 받아서 중성화 비용은 무료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잡아서 수술 후 집에서 요양만 시켜주면 됐었다. 그런데 그래도 정신없었다.

사료를 먹으러 들어가서 밟아야 작동하는 통덫 특성상 누가, 언제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설치해놨는데, 우선적으로 잡으려고 했던 암컷들은 못잡고 처음 보는 녀석들만 새벽시간에 통덫에 들어가 있더라.

그때는 한창 고양이들이 교미를 하는 시기라서, 수컷들이 원래 활동하던 곳보다 먼 곳까지 호르몬에 이끌려서 떠돌아 다니다가 덫에 걸려들었던 것.

아무튼 작년 땅콩털이의 결과는, 잡고 싶었던 암컷 셋 중에 하나만 성공하고 다른 하나는 고정멤버 수컷, 나머지 넷은 처음보는 애들이다.

물론 못잡은 고정멤버 암컷 둘은 임신과 출산을 각각 세마리씩… 했다. 하아…

교미기는 일년에 두 번이라 잠시 쉬었다가 반년쯤 뒤에 암컷 둘 중 하나는 포획에 성공했다. 조금 비싸지만 노랑통덫을 구매했고, 문을 연상태로 사료를 안에 넣어놓고 고양이들이 며칠동안 익숙해지게 한 다음에, 끈을 묶은 드라이버로 문을 고정했다가 목표한 고양이가 들어가면 줄을 당겨서 드라이버가 빠지면 문이 닫혀서 잡는 방식으로.

우리가 익숙한 고정멤버인 고양이라 밥을 먹으러 왔을때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도망을 가지는 않아서 가능한 방법이었다. 다행이 포획에 성공했다. 수술도 잘됐지만 요양하는 기간동안 4번이나 요양실에서 탈출하고 밤새 얼마나 울어댔는지.

작년에는 사용하지 않는 테이블 두개와 네트망인지 메쉬망인지 하는 그런걸 케이블타이로 엮어서 요양실을 만들었는데, 만들고 해체하는데 수고가 많이드는데다가 탈출한 녀석도 있고 해서 올해는 접이식 케이지를 두개나 사버렸다. 진작살걸. 정말 편하더라.

그렇게 작년은 총 일곱녀석, 아니, 중성화 이후에 집안식구가 된 체다까지 합하면 여덟마리를 했다.

그리고 올해, 2024년.

군청 축산과까지 방문해서 문의를 했는데 아직 TNR 지원금 책정이 안되어있더라. 고양이들은 벌써 발정이 나서 난리가 난 상황인데도… 별 수 없이 사비로 수술시키기로 했다. 동물병원 원장님도 사비로 중성화를 한다니까 미안해 하시더라. 우리가 결정한거니 괜찮습니다 선생님… 맛난거 조금 덜먹으면 됩니다… 조금 많이… ㅋㅋㅋ;;

올해는 둥이가 가장 우선순위가 높았다.

삼색이가 낳은 자식들 중 1세대 딸내미인데, 교미를 당하는 장면을 너무 자주 목격해서 분명 임신하겠다 싶더라고.

경계가 심해서 덫에 들어갈까 싶었다. 통덫을 설치 후 집안에서 줄을 잡고 대기했는데 바로 들어가더라?? 엉덩이가 조금 덜 들어간 상태라서 당겨도 될까 엄청 긴장했는데 당겨서 문이 닫히니 쑥 들어가더라?!?

아무튼 수술을 잘마쳤고, 목이 쉴정도로 울긴했지만 요양도 잘 마친 후 바로 다음날 밥먹으러 오더라.

수술 후 요양중인 둥이

그 다음 대상은 삼색이.

어린 삼색이… 지난해에 임신과 출산을 세마리씩 두 번이나 했는데, 첫 출산 후 밥먹으러 올때마다 매번 벌벌떨던 모습이 너무 가여웠다.

솔직히 얘는 이러다가 잘못되겠다는 생각을 한게 한두번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올때마다 계속 영양가 높은 습식을 줬고, 닭가슴살을 줬는데, 한 동안 안보였던 적이 있고 그 후에는 닭가슴살을 물고 가더라고. 아이고… 애를 낳았구나.

포획할 순간만 노리고 있었는데, 1세대 출산 후 독립을 시키자마자 2세대 세녀석을 낳아서 미안하기까지 했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중성화를 해줄걸.

이번에는 2세대 애기들이 스스로 밥을 먹으러 한 번 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잡을 계획을 세웠다.

둥이 만큼은 아니지만 경계심도 꽤 있는 편이라 통덫에 잘 들어가줄까 했는데, 한 번의 실패 이후에 잡았다. 다행스럽게도 문을 닫는 시도를 하지 않은 실패라 덫에 공포심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삼색이를 잡아서 너무 기쁜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 랑이도 같이 잡아버렸다. 수컷들이 랑이도 노리는 것을 여러번 봤기 때문에. 랑이는 손을 조금 타는 편이라, 비닐집에서 멀뚱멀뚱하고 있던애를 그냥 집어들어서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삼색이는 이미 착상을 했더라. 중성화를 하면서 같이 제거가 되는 수준이라고 수의사 선생님이 말씀을 해주셨지만… 이 죄는 내가 지옥에서 받을게, 미안하다 삼색아.

드디어 삼색이가 중성화를! 랑이는 마냥 쓰다듬어달래

수술을 잘 마친 둘은 만 일주일, 비오는 기간동안 잘 요양하고 퇴실했다. 삼색이는 엄청 시끄러울거라 생각했는데 모래를 엄청 파헤친 것 빼고는 의외로 조용했고, 랑이는 계속 쓰다듬어달라고 케이지에 얼굴을 비비고 발을 뻗고… 하는 짓이 완전 애기야 애기.

이로써 지금까지 열 한마리의 포획, 중성화, 방사를 마쳤다.

아직 중성화를 못한 고정멤버들 중 수컷들은 지자체에서 TNR 관련 예산이 책정되면 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남은 암컷들이 문제다.

랑이의 언니 웅이와 체다의 동생 브리. 암컷 세녀석을 중성화 해버리니까 웅이와 브리에게 수컷들이 집중되는게 보여… 웅이는 거의 매일 보게되는 고정멤버지만 브리는 매일까지는 오는게 아니라 잡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잡아야지 어떡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다시 덫에 줄을 묶었다.

잘잡혀줬으면 좋겠다.

너희들한테도 좋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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